QT나눔방
말씀: 창세기 19:12-22
제목: 죄를 경고하는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두 천사가 소돔에 있는 롯을 찾아갔을 때 롯이 보였던 반응을 아브라함의 반응과 비교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얼핏 보면 양쪽이 다 똑같이 섬기는 것 같았습니다. 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섬기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다 똑같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뚜껑만 열고 보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쪽은 영과 진리.. 신령과 진정으로 섬기는 것이고, 한쪽은 지극히 형식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 차이는 아브라함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고 롯은 소돔의 사람이었습니다. 즉 세상적인 것과 자기 욕망에 그 영혼이 걸려 있는 사람이 롯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맞는 태도가 그처럼 극명하게 갈라졌던 것입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소돔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면서 아브라함과 또 로의 삶을 대조적으로 되풀이해서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상 밖으로 이끌어 내라” 여기서 그 사람들은 두 천사지요. 두 천사가 롯에게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롯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친척들까지도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두천사는 자신들이 소돔성을 방문한 이유를 말합니다.
13절입니다.“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심판의 이유는‘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부르짖음은 도대체 누구의 부르짖음이고 어떤 부르짖음이겠습니까? 여기에서 부르짖음의 히브리 말‘차아카’라고 하는 단어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원성’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압제당하는 자’,‘고통당하는 자들’의 원성이 하늘에 사무쳐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을 때 롯의 가족 외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은 그 원성의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아카’라고 하는 히브리 말의 두 번째 뜻은‘죄와 악이 가득한 추잡한 소리’라는 의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광란의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소돔에서 인간들이 죄짓는 소리가‘하늘을 울렸다’라는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대면서 죄를 지었든 아니면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게 죄를 지었든 그 죄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습니다. 여러분 어떤 죄이든지 죄의 소리는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내가 만약에... 남이 보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 죄를 지으면서, 이 죄의 소리는 하나님께 울려 퍼지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믿으면서 그런 소리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멸한다는 동사가 두 번이 반복되며 강조하는데요... 그 심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심판이 임박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다는 말을 들은 롯은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롯이 다급히 딸들과 사위가 될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위 될 사람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노아때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그것을 비웃고 조롱함으로 결국 홍수심판을 당한 노아 당시의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롯의 사위들이 롯의 경고를 웃고 조롱한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것을 찐말씀.. 진리의 말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이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5절“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천사가 롯을 재촉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민첩하게 움직여야 할 때인데 미적미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절.“그러나 롯이 지체하매”이러한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 롯이.. 또 지체하는 것입니다.
**롯이 왜 지체할가요? 비옥한 소돔 땅과 재산에 미련이 남는 겁니다. 롯은 심판의 경고를 머리로는 이해를 했습니다. 이해를 했으니까 나가서 사위들에게 멸망한다고 이야기 했겠지요...?! 그런데 몸은 안 움직이는 겁니다. 왜요? 마음이 안 따르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이해를 했는데.. 지금 이 많은 재산을 놓고 가려고 하니까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까워 죽~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몸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반면에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에 갔는데 흉년이 들어서 점점 남쪽으로 옮겨가다가 애굽까지 갔습니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이브라함은 두려운 마음이 커졌고 아무도 자기 아내를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데.. 사라에게 당신이 예뻐서 사람들이 나 죽이고 당신 빼앗을지 모르니까 지금부터 오누이로 하자고 했습니다. 오누이라고 했기 때문에 바로 왕이 사라를 자기 아내로, 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막으시자 깜짝 놀란 바로 왕이 사라를 도로 아브라함에게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서 아브라함은 재산도 늘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게 아니구나 생각했을 때 아브라함은 지체없이 애굽땅을 떠났습니다. 미적미적하지 않았습니다. 미련 두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소돔’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유혹하는 죄악 된 습관일 수도 있고,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후 6:17에서“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죄악 된 방식과 타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롯처럼 결단의 순간에 지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떠나라”라고 하실 때, 우리는 즉시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16절 하반절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기서 인도했다는 것은 손을 낚아채서 지금 끌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성밖까지 끌고 갔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하나님의 적극적인 구원 행위를 보여줍니다. 롯이 지체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직접 개입하셔서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여전히 롯에게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이고, 롯도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두 사람 똑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깨달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걸어가는 사람이고, 롯은 깨닫고도 자발적으로 안 갑니다. 끌려갑니다.....
우리는 또한.. 다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지금 이시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은 자발적으로 걸어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평생 끌려갑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매 맞고..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 하고.. 또 끌려가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그 자비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17절.“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에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천사들은 롯에게 세 가지 명령을 내립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지 말라”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 이 명령들은 단순히 물리적인 도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죄악 된 삶과 완전히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영적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날마다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기도의 산으로 올라가야 되고.. 말씀의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또한..헌신과 봉사의 산으로도 올라가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든 면에 걸쳐서.. 예수님이라는.. 산 정상까지 계속 닮아.. 올라가는.. 신앙의 삶이, 내 생명을 생명답게 보존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과 롯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이.. 하란을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본문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99세 때 이야기 입니다...
2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출발은.. 24년 전에 똑같았는데, 24년이 지나고 보니, 이처럼 두 사람의 삶은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삶이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삶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하나님이었고, 롯에게 있어서는 세상이 우선순위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24년 이후에.. 우리의 모습은 아브라함과 롯처럼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무엇이겟습니까? 간단합니다.‘엘 샤다이....’하나님의 전능하심, 하나님의 충분하심,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크신 분이시고, 이 세상 모든 것보다도 그분이 더 충분하신 분이심을 내가 믿을 때..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선택과 결단을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손길을 꼭 붙잡고, 매일 생명의 삶을 살아가고..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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