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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 1:41-48
제목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
41 아도니야와 그와 함께 한 손님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다 들은지라 요압이 뿔나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어찌하여 성읍 중에서 소리가 요란하냐
42 말할 때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오는지라 아도니야가 이르되 들어오라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43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과연 우리 주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셨나이다
44 왕께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솔로몬과 함께 보내셨는데 그들 무리가 왕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워다가
45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이 기혼에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무리가 그 곳에서 올라오며 즐거워하므로 성읍이 진동하였나니 당신들에게 들린 소리가 이것이라
46 또 솔로몬도 왕좌에 앉아 있고
47 왕의 신하들도 와서 우리 주 다윗 왕에게 축복하여 이르기를 왕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왕의 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48 또한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내 왕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
한 도시 안에서 동시에 두 개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에느로겔에서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벌인 잔치였고, 다른 하나는 기혼에서 다윗의 명령을 따라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는 조용하지만 확실한 즉위식이었습니다.
아도니야의 잔치는 시끌벅적했습니다. 사람을 모으고, 소를 잡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잔치를 무너뜨린 것은 군대도 아니고 정치적 반격도 아니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온 백성들의 함성, 곧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향한 기쁨의 소리였습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잔치를 벌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진 왕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갈 때, 갑자기 초대받지 못한 소식 하나가 날아듭니다.
41절에 아도니야의 잔치가 "먹기를 마칠 때"라고 말합니다. 즉 잔치가 절정에 이르러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사람의 계획이 성취를 눈앞에 둔 그 순간,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에 흐르는 패턴입니다. 사람의 계획이 완성되려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아도니야와 그와 함께한 손님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나팔 소리를 듣습니다.
주목할 인물은 요압입니다.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던 그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전쟁 경험이 많은 그의 귀에 나팔 소리는 예사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요압은 그 소리에 놀라 "성읍 중에서 소리가 요란함은 어찜이냐"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불안의 시작입니다. 화려해 보이던 잔치 자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요나단이 등장합니다. 그는 앞서 다윗과 압살롬의 반역 때에도 중요한 소식을 전했던 인물입니다(삼하 17:17-21). 아도니야는 그를 반갑게 맞으며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이 전한 소식은 정반대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나단의 용기를 봅니다. 그는 아도니야의 잔치 자리, 그의 편에 서 있던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이었지만, 거짓으로 상황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전합니다. "과연 우리 주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셨나이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진실을 전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아무리 그 자리가 불편하고 위험해도 진실은 전해져야 합니다.
아도니야의 잔치는 처음부터 사람의 계획으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고(왕상 1:5), 요압과 아비아달 같은 실력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잔치 안에는 하나님께 묻는 기도가 없었고, 다윗 왕의 뜻을 구하는 순종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세우려는 모든 것은 결국 소란함으로 끝납니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시끄러운 잔치일수록, 그 속은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초가 사람의 야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런 잔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힘과 판단으로 세워가는 계획들, 사람의 지지를 모아 만들어가는 자리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람이 세우는 것은 결국 흔들리고, 요란한 소리로 무너집니다.
44절에서 47절 말씀에
요나단이 진짜 소식을 전합니다. 다윗 왕이 사독 제사장과 나단 선지자와 브나야를 보내어 솔로몬을 노새에 태워 기혼으로 인도했고, 그들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읍에서 올라오며 즐거워하므로 성읍이 진동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순서입니다. 다윗의 명령, 제사장과 선지자의 순종, 백성의 기쁨. 이 모든 것이 사람의 계략이 아니라 왕의 뜻을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즉위는 화려한 잔치나 많은 병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의 침상 곁에서, 조용한 명령과 순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온 성읍을 진동시키는 참된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조용하고 더디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그 섭리는 반드시 이루어지고, 그 기쁨은 결코 사람이 만든 소란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진동을 일으킵니다.
"성읍이 진동하였다"는 표현은 백성들의 자발적이고 뜨거운 반응을 보여줍니다. 강요된 충성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기쁨의 함성이었습니다.
아도니야의 즉위식과 비교해 본다면 아도니야는 스스로 병거와 기병을 준비했지만(5절),
솔로몬은 다윗 왕이 직접 명하여 왕의 노새를 태웠습니다.
아도니야는 사독과 나단을 배제했지만(8절), 솔로몬의 즉위에는 이들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겉모습의 화려함이 아니라, 정당한 권위를 통해 세워졌는가가 참된 왕권의 기준입니다.
솔로몬이 나라의 왕좌에 앉았다 라는 이 짧은 문장 속에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도니야가 아직 잔치 자리에서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그 순간, 솔로몬은 이미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논쟁하고 저항할 틈도 없이 조용하고 확실하게 이루어집니다
.
신하들의 축복 기도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왕의 왕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이는 다윗을 향한 예의가 아니라, 다윗의 통치를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바라는 진심 어린 축원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언제나 앞선 세대보다 더 크게 나아가야 합니다.
48절 말씀은 본문의 절정입니다. 솔로몬의 즉위 소식을 들은 다윗은 늙고 병들어 침상에서 몸을 굽혀 하나님께 절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주께서 내 아들 중에 하나를 택하셔서 왕위에 앉히시고 내 생전에 그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그 무력함 속에서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는 눈만큼은 살아 있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무력한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일을 행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고, 아들의 영광을 부러워하지도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인정하고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참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 때에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면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것은 원망이 아니라 찬송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예배가 시작됩니다.
48절 고백에는 이런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자신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개인적 감격을 넘어 언약 공동체를 향한 신앙 고백입니다.
"오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때가 신실하게 이루어졌음을 인정합니다.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 다윗은 이 모든 일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보여주신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다윗의 고백에는 시기나 아쉬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와 찬양뿐입니다. 자신의 왕위가 끝나가는 순간에도,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왕위는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고 이어가시는 것임을 말입니다.
우리의 삶과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운 것, 우리가 이룬 것처럼 보여도, 결국 모든 것을 세우시고 이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내 자리, 내 역할이 넘겨질 때 그것을 감사와 찬양으로 받을 수 있으시길 소망합니다.
아도니야의 잔치는 소란했지만 결국 무너졌습니다. 솔로몬의 즉위는 조용했지만 하신 것이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고 있는 자리와 계획이 사람의 소란함으로 세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며 세워가는 것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윗처럼 그 섭리 앞에 겸손히 엎드려 찬송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역사의 세밀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요압의 예민한 귀, 요나단의 정직한 입, 사독과 나단의 신실한 순종, 그리고 다윗의 겸손한 찬송, 이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각 자리에서 이와 같은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진실을 전하는 요나단처럼, 정당한 권위에 순종하는 사독과 나단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다윗처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통해 사람이 만든 잔치는 소란과 두려움으로 흩어졌고,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즉위는 찬송과 감사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스스로 세우려는 잔치가 있는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그 자리를 하나님께 내려놓읍시다. 하나님의 뜻은 더디게 오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때, 다윗처럼 침상에서라도 몸을 굽혀 하나님을 찬송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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