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방
본문 : 사무엘하 19:24-39
제목 : 은혜에 붙들린 사람은 충성스럽고 겸손하다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오늘의 말씀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지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장면 속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므비보셋은 다윗이 떠난 뒤부터 발도 수염도 손질하지 않은 채 슬픔과 충성을 보였고, 바르실래는 왕을 물질과 실제적 도움으로 섬겼습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각각 반응하면서, 은혜를 대하는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24절에서 30절에 먼저 므비보셋을 보겠습니다. 그는 사울의 손자였지만, 다윗의 은혜로 왕의 식탁에 함께 앉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날 때, 므비보셋은 왕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본문은 그가 발을 씻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고, 옷을 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라 슬픔과 충성의 표현입니다.
므비보셋은 말로만 다윗을 붙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억울하게 변명하기보다, 왕이 돌아오기까지 자신을 낮추고 기다렸습니다. 세상은 상황이 좋을 때만 사람을 따르지만, 믿음은 상황이 어려워도 은혜를 기억합니다. 진짜 신앙은 환경이 아니라 은혜의 기억 위에 서 있습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마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은 시험이 와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은 흔들려도 중심을 지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떠난 동안 자신의 몸가짐을 돌보지 않으며 왕의 귀환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왕의 은혜를 잊지 않았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 앞에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신앙은 상황이 아니라 은혜의 기억으로 버티는 것입니다.
시므이가 급히 다윗에게 엎드려 용서를 구한 것과 달리, 므비보셋은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르실래 역시 왕을 위해 나이 많음에도 실제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다윗은 그를 축복하며 감사했습니다. 참된 충성은 필요할 때만 붙는 태도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하는 삶입니다. 진짜 충성은 말보다 삶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묻습니다. 왜 나를 따르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을 종이라고 부르며, 시바가 자신을 모함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왕께서 평안히 돌아오셨으니, 자기 몫은 시바에게 다 주어도 좋다고 합니다.
이 말에는 억울함을 내려놓는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억울하면 자기 권리를 꼭 붙잡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자신의 권리보다 왕의 귀환을 더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아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는 이익을 따지기보다 왕이 돌아온 사실 자체를 기뻐했습니다.
31절에서 39절 말씀에 또 한 사람 바르실래가 있습니다. 그는 매우 늙은 사람이었지만, 다윗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 왕을 공궤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과 삶으로 왕을 섬겼습니다. 다윗이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초청했을 때,
바르실래는 정중히 거절합니다. 자신은 나이도 많고, 더 이상 왕의 호의를 누릴 형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대신 아들인 김함을 왕과 함께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장면은 참 아름답습니다. 바르실래는 끝까지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기 편의보다 왕의 뜻을 우선합니다. 이것이 진짜 충성입니다. 충성은 큰소리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조용히 헌신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계산보다 헌신을 선택합니다.
바르실래는 왕의 초청을 받았지만, 자신의 나이와 형편을 생각해 예루살렘의 영광보다 고향과 조용한 마무리를 택합니다. 대신 자신의 사람 김함을 왕과 함께 보내며, 마지막까지 왕을 섬기는 마음을 보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기 유익보다 주인의 뜻을 더 크게 여깁니다.
바르실래는 그 초청을 자기 영광의 기회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는 겸손입니다. 그는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라고 말하며, 남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이 말 속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지혜가 있습니다. 사람은 젊을 때 더 가지려 하고, 더 올라가려 하고, 더 드러나려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깊어질수록 달라집니다. 내 인생이 주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계산보다 헌신이 앞서게 됩니다. 바르실래는 자기 몫을 구하지 않고, 왕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실 우리도 자주 계산합니다. 내가 얼마나 더 얻을 수 있는가, 내가 무엇을 돌려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깊이 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이미 받은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더 이상 손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 용서, 동행, 공급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감사로 바뀌어야 합니다.
본문의 마지막 39절은 참 따뜻합니다. 다윗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빕니다. 왕이 그를 축복하고, 바르실래는 자기 곳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은 잊을 수 있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은혜를 기억하며 충성한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보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섬기는 자리, 보상받지 못해도 지키는 자리, 내 권리를 내려놓고 공동체를 살리는 자리, 그 자리를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세상은 결과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세상은 크기를 보지만, 하나님은 진실함을 보십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묻습니다.
나는 억울함 앞에서 원망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므비보셋처럼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입니까?
또한 나는 필요할 때만 다가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바르실래처럼 조용히 끝까지 동행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그 답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고,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므비보셋처럼 은혜를 잊지 말고, 바르실래처럼 끝까지 섬기며, 자기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귀하게 여기시면 살아가십시다.
사랑하는 신암의 공동체 여러분~ 사무엘하 19장 후반은 단순한 귀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은혜를 아는 사람과 자기 유익을 좇는 사람의 차이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므비보셋은 억울함 속에서도 왕을 붙들었고, 바르실래는 늙은 몸으로도 끝까지 왕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들의 진심을 받아주며 축복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말로만 믿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믿는 사람, 계산하지 않고 은혜에 반응하는 사람,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고,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한 본문은 결국 사람의 진심은 위기와 회복의 순간에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므비보셋은 은혜를 기억했고, 바르실래는 끝까지 섬겼으며, 다윗은 그 은혜에 응답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계산보다 감사, 변명보다 충성, 말보다 삶으로 은혜를 드러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오늘도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제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은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은혜를 기억하며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사랑하는 신암의 식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3679 | 4월 17일 새벽기도회 설교 요약 | 이승민 | 2026-04-17 | 4 | |
| 3678 | 4월 16일 새벽기도회 설교요약 | 이승민 | 2026-04-16 | 5 | |
| 3677 | 4월 15일 새벽설교 요약 | 안은경 | 2026-04-15 | 10 | |
| 3676 | 4월 14일 새벽설교 요약 | 안은경 | 2026-04-14 | 9 | |
| 3675 | 4월 13일 새벽설교 요약 | 안은경 | 2026-04-13 | 11 | |
| 3674 | 4월 11일 토요새벽 설교 요약 | 곽숭기 | 2026-04-11 | 17 | |
| 3673 | 4월 10일 새벽설교 요약 | 김성호 | 2026-04-10 | 15 | |
| 3672 | 4월 9일 새벽설교 요약 | 김성호 | 2026-04-09 | 17 | |
| 3671 | 4월 8일 새벽설교 요약 | 고윤수 | 2026-04-08 | 15 | |
| 3670 | 4월 7일 새벽설교 요약 | 고윤수 | 2026-04-07 | 16 | |
| 3669 | 4월 6일 새벽설교 요약 | 고윤수 | 2026-04-06 | 18 | |
| 3668 | 2026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여섯째 날(토) 설교 요약 | 곽숭기 | 2026-04-04 | 16 | |
| 3667 | 2026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다섯째날)금) 설교 요약 | 곽숭기 | 2026-04-03 | 20 | |
| 3666 | 2026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넷째날(목) 설교 요약 | 곽숭기 | 2026-04-02 | 17 | |
| 3665 | 2026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셋째날(수) 설교 요약 | 곽숭기 | 2026-04-01 | 21 |



댓글